집중호우와 폭염 사이, 배수와 저류를 함께 설계하는 산 관리

우리나라의 비는 점점 더 짧고 강하게 몰리고, 더위와 가뭄은 길어진다. 이런 조건에서 산 관리는 물을 빨리 빼내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집중호우를 버틸 배수능력과, 폭염과 가뭄을 버틸 저류능력을 함께 키워야 한다. 그 해법은 큰 댐 하나가 아니라, 작은 배수 구조와 작은 저류 구조를 여러 곳에 연결해 물의 힘을 나누고 수분을 오래 남기는 방식에 가깝다.

최근 우리나라의 여름은 더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 오래 덥고 마른 날이 이어지다가도, 비가 오면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쏟아진다. 이런 조건에서 산 관리는 물을 빨리 빼내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너질 물은 안전하게 흘려보내고, 남길 물은 토양과 지형 안에 붙잡아 두는 방식, 곧 배수와 저류를 함께 설계하는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강수는 원래도 여름에 집중되는 편이다. 기상청 1991~2020년 기후평년값 기준으로 연 강수량은 1,306.3mm이고, 그중 710.9mm가 여름 3개월에 내린다. 연 강수량의 54.4%가 여름에 몰려 있다는 뜻이다. 서울은 이 비중이 약 63%까지 올라간다. 문제는 이 많은 비가 고르게 나뉘어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비 오는 날수는 줄고, 한 번 올 때 더 짧고 굵게 쏟아지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평소에는 마르고, 비가 오면 한꺼번에 쏟아지는 조건이 산을 동시에 압박하는 셈이다.

좋은 산은 배수능력과 저류능력을 함께 가져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좋은 산은 물을 빨리 버리는 산도 아니고, 무작정 붙잡는 산도 아니다. 집중호우를 견딜 배수능력과, 폭염과 가뭄을 버틸 저류능력을 함께 가진 산이다. 큰비가 왔을 때는 무너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물을 나눠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하고, 비가 그친 뒤에는 긴 더위와 가뭄을 버틸 만큼 충분한 물을 토양과 식생 아래에 남겨 둘 수 있어야 한다.

산에서 배수는 오랫동안 길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기술로 이해되어 왔다. 비가 오면 물길을 빨리 빼고, 노면에 물이 고이지 않게 하며, 사면이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정리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이런 판단은 지금도 중요하다. 다만 최근의 기후 조건에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이제 배수는 단지 물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물의 힘을 쪼개고 속도를 낮추며 방향을 분산시키는 기술이어야 한다.

임도 횡배수 개념도 임도 위에 물이 길게 모이지 않도록 rolling dip과 횡배수로를 두어 숲 바닥으로 분산시키는 개념도 임도에서는 물을 길게 모으지 않고, 자주 끊어 숲 바닥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USDA Forest Service의 surface cross drain 개념을 참고해 한국어로 재구성한 그림 임도 진행 방향 노면에 모인 빗물 rolling dip / 횡배수 길게 몰리기 전에 물길을 끊어 바깥으로 보냄 분산 배수 물을 숲 바닥으로 퍼뜨려 침식과 집중을 줄임 침투·저류 구간 토양과 식생 아래에 수분이 더 오래 남도록 유도
임도 배수의 핵심은 물을 한 줄로 오래 모으지 않고, 자주 끊어 분산시키는 데 있다. USDA Forest Service의 surface cross drain 개념을 참고해 재구성.

임도와 작업로에서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물이 한 줄로 길게 몰리지 않게 하는 일이다. 흐름이 한곳에 집중되면 침식이 커지고, 노면과 사면은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좋은 배수 구조는 물을 자주 끊어 바깥으로 분산시키고, 필요하면 작은 구간마다 넘치는 힘도 낮춰야 한다. 숲길과 임도에서 rolling dip이나 cross drain 같은 구조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류를 살리기 위해서도 먼저 집중된 흐름을 줄이는 기초 배수가 필요하다.

물을 남겨야 숲도 버틴다

하지만 배수만으로는 산을 오래 버티게 할 수 없다. 비가 그친 뒤에도 산에는 물이 남아 있어야 한다. 토양 속으로 스며드는 물, 낙엽층과 식생 아래에 머무는 물, 작은 지형의 굴곡과 완만한 사면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물이 있어야 긴 더위도 버틸 수 있다. 물을 단번에 밖으로 흘려보내는 산은 집중호우에는 약하고, 가뭄에도 약하다. 잠깐은 버틸 수 있어도 오래 가는 숲이 되기 어렵다.

이 점에서 저류는 사람의 용수 문제만이 아니다. 산에 물을 남긴다는 것은 더위와 가뭄 속에서 이동하기 어려운 작은 동물과, 제자리를 떠날 수 없는 식물이 버틸 시간을 늘려 주는 일이기도 하다. 움직일 수 있는 동물은 더 습한 곳이나 그늘로 피할 수 있지만, 이동 범위가 제한된 작은 동물과 한자리에 뿌리내린 식물은 그렇지 못하다. 물이 너무 빨리 빠져나가는 산에서는 사람보다 먼저, 말없이 버티는 생물들이 타격을 받는다. 배수와 저류를 함께 설계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의 안전과 용수만이 아니라 산속 생태계의 버팀력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Pool forming upstream of a Beaver Dam Analog (BDA)
작은 투수성 구조물은 계류의 흐름을 완전히 막지 않으면서도 큰비 때 물의 속도를 늦추고, 주변에 더 오래 수분이 남도록 돕는다. 사진: U.S. National Park Service, Great Basin National Park.

큰 댐 하나보다 작은 완충장치 여러 개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우리가 산에 큰 댐을 지을 수는 없다. 큰 둠벙 하나로도 부족하다. 현실적인 방향은 분산형 소규모 저류와 빠른 분산 배수, 그리고 침투 회복을 함께 묶는 것이다. 물을 한곳에 많이 모으기보다 여러 곳에 나눠 늦추고 스며들게 하면서, 넘칠 때는 안전하게 흘려보내는 구조가 더 현실적이다.

국내에서 참고할 수 있는 축은 사방댐, 계류보전, 산지사방 같은 방식이다. 사방댐은 대형 댐이라기보다 산간 계류 상류에서 토사와 유목, 급류의 힘을 줄이는 작은 재난예방 구조물에 가깝다. 해외의 leaky barrier나 beaver dam analogue도 방향은 비슷하다. 흐름을 완전히 막기보다 잠깐 늦추고 퍼뜨려 주변에 수분이 더 오래 남도록 돕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큰 구조물 하나가 아니라, 작은 완충장치들을 여러 지점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 기준은 임도와 작업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좋은 길은 비만 오지 않으면 되는 길이 아니다. 비가 왔을 때 무너지지 않아야 하고, 평소에는 산을 지나치게 말리지 않아야 한다. 길 하나를 내더라도 물을 한 번에 몰아버리는 구조인지, 아니면 나누고 늦추고 스며들게 하는 구조인지에 따라 산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달라진다.

앞으로의 산 관리는 큰 저수지 하나를 만드는 방식보다, 작은 배수 구조와 작은 저류 구조를 여러 곳에 연결해 집중호우의 힘을 나누고 가뭄기의 물을 오래 남기는 쪽에 더 가까워야 한다. 산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의 큰 댐이 아니라, 배수능력과 저류능력을 함께 떠받치는 많은 작은 완충장치들이다.

우리나라 산은 앞으로 더 자주 뜨겁고, 더 자주 거센 비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좋은 산 관리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물을 빨리 빼내는 산이 아니라, 물을 잘 나누고 잘 흘려보내면서도 동시에 잘 붙잡아 둘 수 있는 산이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배수와 저류를 함께 설계하는 산 관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글과 함께 보면 흐름이 더 잘 잡히는 글로는 산사태를 줄이고 물을 확보하는 산 관리의 새로운 방식과 산불과 임도, 그리고 배수가 있다. 앞의 글이 산 전체를 물을 붙잡는 인프라로 보는 문제의식에 가깝다면, 뒤의 글은 임도와 작업로에서 배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더 현장적으로 본 글이다.


출처 메모

  • 기상청 한국 기후특성: https://www.weather.go.kr/w/climate/statistics/korea.do
  • 기상청 서울·경기도 기후특성: https://www.weather.go.kr/w/climate/statistics/region.do
  •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https://www.pcccr.go.kr/base/board/read?boardManagementNo=69&boardNo=5102
  • USDA Forest Service, Water/Road Interaction: Introduction to Surface Cross Drains: https://www.fs.usda.gov/t-d/pubs/pdf/w-r/98771806.pdf
  • U.S. National Park Service, Leave it to Beaver… Dam Analogs: https://www.nps.gov/articles/000/bdas.htm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