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많고 비가 많이 오는 우리나라에서 기후위기를 맞는다는 것은, 산을 더 이상 방치된 자연으로만 둘 수 없다는 뜻에 가깝다. 앞으로의 산은 비를 한꺼번에 흘려보내는 공간이 아니라, 물을 붙잡고 나누고 늦추는 방향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산사태 위험을 줄일 수 있고, 동시에 물도 더 오래 확보할 수 있다.
왜 지금 산 관리 방식이 달라져야 하나
이제는 평균적인 비보다 이상기후로 인한 극단적인 폭우를 기준에 넣어야 한다. 산의 물 관리 방식도 더 이상 물을 빨리 흘려보내는 데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산사태 위험을 줄이면서도 물을 오래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산은 단순한 자연 배경이 아니라, 재해를 줄이고 물을 붙잡는 관리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산사태를 줄이려면 물을 빨리 버리지 말아야 한다
산의 물은 한꺼번에 빠르게 내려보낼수록 위험해진다. 반대로 물이 중간중간 머물렀다가 천천히 내려가도록 만들면, 속도와 압력을 줄일 수 있고 산사면이 쓸려나가는 위험도 낮출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저수지 하나가 아니라, 물이 힘을 얻기 전에 여러 단계에서 쉬어가게 만드는 다단계 구조다. 좋은 산간 인프라는 물을 억지로 막는 구조가 아니라, 물을 붙잡고 나누고 늦추는 구조여야 한다.
폭우를 대비한 다단계 물 관리 구조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산 관리에서는 평상시 물 저장과 폭우 대응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작은 저수 지점과 관로를 통해 물을 순환시키고, 집중호우 때는 별도의 완충 구간과 우회 수로가 초과 유량을 받아내는 식의 구조가 필요하다. 즉, 1차 저장, 2차 완충, 초과 유량 우회, 최종 안전 방류가 겹겹으로 설계돼야 한다. 폭우 때는 물을 저장하는 능력만큼이나 안전하게 넘기는 능력이 중요하다.
거대한 토목보다 물길과 지형을 살리는 방식
이런 구조의 핵심은 물길을 억지로 거스르는 데 있지 않다. 기존 지형의 흐름을 읽고, 물이 힘을 얻기 전에 중간중간 쉬어가게 만드는 데 있다. 대부분의 산은 거대한 구조물을 세우기에 적합하지 않다. 비용도 많이 들고 자연 훼손도 크며, 폭우 때 시설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외부에서 거대한 시설을 들여오는 기술이 아니라, 산의 원래 물길과 지형을 읽고 그 안에서 해결하는 방식이다.
간벌목과 돌을 활용한 자연 친화적 산 관리
산에서 나온 간벌목과 돌을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간벌목은 작은 물막이와 유속 저감 구조, 임시 보강재로 쓰일 수 있고, 돌은 물길 가장자리나 작은 저류 지점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숲을 관리하며 나온 재료를 다시 산의 물 관리 체계에 연결한다면, 치수와 산림 관리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 구조 안에서 이어질 수도 있다.
에너지 저장 아이디어는 보조 기능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산의 높이 차를 활용한 물 저장과 에너지 아이디어도 덧붙여볼 수 있다. 산 곳곳에 작은 저수 지점을 만들고, 맑은 날에는 태양광으로 아래의 물을 위로 끌어올렸다가 필요할 때 다시 흘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산 자체를 하나의 배터리처럼 활용하는 발상이다. 다만 이 아이디어의 중심은 발전 자체가 아니라, 산의 물 관리 체계를 더 자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느냐에 있다. 에너지 기능은 산 관리의 주제가 아니라, 잘 붙으면 도움이 되는 보조 기능에 가깝다.
기후위기 시대, 산은 물을 붙잡는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물론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산사면 안정성, 집중호우 때 넘침과 파손, 퇴적물 관리, 생태계 영향, 유지보수 비용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겨울철 결빙을 막기 위한 구조가 야생동물과 경관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이 방향은 당장 대규모로 밀어붙일 계획이라기보다, 산간 지역에 맞는 소규모 분산형 물 관리 실험부터 시작해볼 제안에 가깝다.
그래도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산이 많고 비가 많이 오는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필요한 것은 비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산이 아니라, 물을 붙잡고 나누고 늦추는 산이다. 산사태 위험을 줄이고 미래의 물을 확보하려면, 산은 더 이상 방치된 자연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맞게 돌보고 관리해야 할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